학창 시절, 국사시간에 배워본 불상 중에서 기억에 가장 남는 것은 은진미륵이었다. 물론 경주 불국사에 있는 석굴암 안의 본존불상도 뇌리에 깊게 박혀있는 불상이지만, 그래도 그보다 더 강한 한방으로 머릿속에 쏘-옥 주입된 것은 바로 이 은진미륵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진만 보면 그냥 기억이 된다. 흔히 보는 불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외모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석굴암의 본존불상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두 불상은 정말 극과극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석굴암은 장소적 특성 때문에 그 신비로움이 더해지기도 하지만, 사진으로 불상의 얼굴만 보아도 이건 인간계의 얼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그시 감은 눈, 어떠한 감정도 느끼고 있지 않은 상태, 어떠한 경지에 이르고 있는 중인 것 같은 느낌,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라는 것을 위해선 본존불상과 같은 얼굴로 명상을 해야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나름 합리적인 상상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은진미륵은 어떠한가.
크고 넙데데한 얼굴이 불상의 3분의 1이나 차지하고 있다. 복코라고 말해도 될 만큼 넉넉한 코 평수와 나즈막하면서도 옆으로 퍼진 콧볼을 가지고 있고, 눈은 확실하게 뜬 건지 아니면 원래 다 떠도 저만큼인 건지 반쯤 뜬듯한 눈인데 눈동자는 명확한 색을 가지고 있어 범상치 않아 보인다. 입술 또한 코처럼 넉넉한 면적을 자랑하는데 얼굴이 크다 보니 어깨가 좁아 보이는 건지 어깨가 좁아서 얼굴이 커 보이는 건지 헷갈린다.
전체적인 몸의 비율도 사람이라기엔 만화에 나올법한 비현실적인 비율을 가지고 있는데 머리위 높이 솟아있는 머리장식의 높이를 보면 예사롭지 않아 평범한 사람이라기엔 비범한 분위기를 풍긴다.
흔하디 흔한 불상만 보다가는 은진미륵 앞에선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고운선을 사용하지 않아 대충 만든 것도 같은 이 불상은 자세히 보면 반전의 매력이 있다.
얼굴을 자세히 보면 그 눈썹이 신비롭다. 눈도 크고 코도 입도 크지만 유난히 얇은 눈썹을 보면 있는듯 없는 듯해도 굴골이 제대로 있다 보니 명확히 표현되어 있는데 눈 주변을 자세히 보면 눈두덩이가 도톰한 게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또한 거대한 불상의 크기와 거대한 얼굴크기와 대비되는 모습이 눈에 띄인다. 위로 올려진 손을 보자.
은진미륵의 오른손 쪽을 자세히 보면 청동제 꽃이 손에 쥐어져 있는데, 너무 가느다란 줄기와 작은 꽃잎이라 딱딱한 청동이라도 그렇게 가냘파 보일 수가 없었다.
관촉사에 직접가서 은진미륵을 본다면 멀리서만 바라보지 말고 가까이서 발 부분도 감상해보길 권한다. 옷자락 밑으로 빼꼼 나와있는 발가락들이 왜 이렇게 매력적인지, 은진미륵은 사진빨보다 실제로 보아야 그 매력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비록 아는 지식이 별로 없어 감상할 수 있는 범위가 이 정도였지만, 실제로 은진미륵을 마주했을 때 그 거대함과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얼굴로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은 은진미륵은 다음에 논산을 지나게 된다면 또다시 방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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